9급 지방직 공무원 한국사 필기 기출문제복원 (2008-05-25)

9급 지방직 공무원 한국사
(2008-05-25 기출문제)

목록

1과목: 과목 구분 없음

1. 발해의 대외관계에 대한 옳은 설명으로만 묶인 것은?

  1. ㄱ, ㄴ
  2. ㄱ, ㄹ
  3. ㄴ, ㄷ
  4. ㄷ, ㄹ
(정답률: 78%)
  • 정답은 ㄴ, ㄷ입니다.

    * ㄱ. (오답) 발해는 당나라 문화를 수용하였지만, 정혜공주묘는 고구려 양식의 돌방무덤(석실봉토분)으로, 전형적인 당나라 양식의 벽돌무덤이 아닙니다. 당나라 양식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은 정효공주묘지만, 이 또한 발해의 독자적 요소를 결합한 것입니다.
    * ㄴ. (정답) 발해는 북방의 돌궐과 교류하며 당을 견제했고, 일본과는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사신을 파견하며 우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 ㄷ. (정답) 발해는 당나라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당의 문물을 받아들였으며, 유학생들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과거 시험인 빈공과에 급제하여 발해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 ㄹ. (오답) 발해와 신라는 서로 경쟁적인 관계였으며, 당나라에 대항하여 연합한 사실은 없습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2. 다음은 우리나라의 어떤 역사책에 대한 설명이다. 이 책의 편찬과 가장 근접한 시기에 일어난 사건은?

  1. 요나라의 성종은 여러 차례에 걸쳐 고려에 침입하여 왔다.
  2. 묘청 등이 칭제건원과 금나라 정벌을 주장하였다.
  3. 고려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 대비하였다.
  4. 고려는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철폐하고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하였다.
(정답률: 87%)
  • 제시된 설명은 『삼국사기』에 대한 것입니다. 『삼국사기』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로,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김부식 등이 1145년에 편찬했습니다.

    * 정답: 묘청 등이 칭제건원과 금나라 정벌을 주장하였다.
    묘청의 난은 1135년~1136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삼국사기』가 편찬된 시기(1145년)와 가장 근접합니다. 인종은 묘청의 난 이후 혼란을 수습하고 왕실의 권위를 재확립하기 위해 『삼국사기』 편찬을 명했습니다.

    * 오답 해설:
    * 요나라의 성종은 여러 차례에 걸쳐 고려에 침입하여 왔다. 이 내용은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에 발생한 거란(요)의 침입에 대한 설명으로, 『삼국사기』 편찬 시기보다 훨씬 이릅니다.
    * 고려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 대비하였다. 이는 1232년에 발생한 몽골 침략기의 일로, 『삼국사기』 편찬 시기보다 약 1세기 뒤의 사건입니다.
    * 고려는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철폐하고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하였다. 이 사건은 공민왕 때인 1356년에 일어난 일로, 『삼국사기』 편찬 시기보다 훨씬 뒤의 사건입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3. 1920년대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고등교육기관으로 대학을 설립해야 한다는 취지 하에 민립대학 설립운동을 추진하였다.
  2. 민족자본의 육성을 위해 물산장려운동을 추진하였다.
  3. 사회주의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조선공산당도 조직되었다.
  4. 조선학 운동이 전개되었고, 한국 학자들이 결집하여 진단학회를 창립하였다.
(정답률: 63%)
  • 정답인 "조선학 운동이 전개되었고, 한국 학자들이 결집하여 진단학회를 창립하였다."는 1920년대의 상황으로 옳지 않습니다. 진단학회는 1934년에 창립되었으므로, 이는 1930년대의 역사적 사실입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4. 조선 전기(15~16세기)의 향촌사회 조직과 운영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사창제는 사족 중심의 향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실시한 자치적 구휼제도였다.
  2. 사족은 그들의 총회인 향회를 통해서 자신들의 결속을 다지고 지방민을 통제하였다.
  3. 선현의 제사와 교육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서원은 향촌 사림을 결집시키는 기능도 하였다.
  4. 총액제에 의한 지방 재정의 운영으로 향촌에서 사림의 지위는 강화되었다.
(정답률: 49%)
  • 총액제는 조선 전기 향촌 사림의 지위 강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지방 재정 운영 방식이 아닙니다. 사림의 지위는 향회(鄕會), 향약(鄕約) 등 향촌 자치 조직의 운영과 서원(書院), 사창제(社倉制)와 같은 향촌 유력 기구들을 통해 강화되었습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5. 다음 자료는 고려시대 관제의 한 부분을 설명한 것이다. 밑줄 친 ㉠~㉣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국방 문제를 담당하는 합좌 회의 기구였다.
  2. ㉡-중서문하성의 장관으로 국정을 총괄하는 지위에 있었다.
  3. ㉢-관리의 임명 등에 동의하는 서경의 권한을 갖고 있었다.
  4. ㉣-국가의 제반 정무를 관장하는 최고 정무 기구였다.
(정답률: 72%)
  • 해설:
    이 문제는 고려 시대의 주요 관제 기구에 대한 이해를 묻고 있습니다. 지문은 도병마사(㉠)가 문하시중(㉡), 평장사, 추밀(㉢) 등을 구성원으로 하여 합좌 회의를 하였고, 후에 도평의사사(㉣)로 개편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국방 문제를 담당하는 합좌 회의 기구였다.
    * ㉠ 도병마사(都兵馬使)는 고려 시대에 국방 및 군사 문제를 담당하던 최고 합좌 회의 기구였습니다. 이후 기능이 확대되어 국가의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로 발전합니다. 이 설명은 옳습니다.

    2. ㉡-중서문하성의 장관으로 국정을 총괄하는 지위에 있었다.
    * ㉡ 문하시중(門下侍中)은 고려의 최고 관직으로,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수장이자 재신(宰臣)의 으뜸이었습니다.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지위에 있었으므로 이 설명은 옳습니다.

    3. ㉢-관리의 임명 등에 동의하는 서경의 권한을 갖고 있었다.
    * ㉢ 추밀(樞密)은 중추원(中樞院)의 고위 관직으로, 도병마사의 구성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관리의 임명 등에 동의하는 서경(署經)의 권한은 주로 대간(臺諫), 즉 중서문하성의 낭사(郎舍)와 어사대(御史臺)의 대관(臺官)이 행사했습니다. 추밀을 포함한 도병마사의 구성원들이 직접 서경권을 가진 것은 아니므로 이 설명은 옳지 않습니다.

    4. ㉣-국가의 제반 정무를 관장하는 최고 정무 기구였다.
    * ㉣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는 원 간섭기에 도병마사가 개편되면서 국방뿐만 아니라 인사, 재정 등 국가의 제반 정무를 관장하는 명실상부한 최고 정무 기구로 기능했습니다. 이 설명은 옳습니다.

    따라서 옳지 않은 것은 3번입니다.

    정답: ㉢-관리의 임명 등에 동의하는 서경의 권한을 갖고 있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6. 다음의 단체와 관련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다.
  2. 좌파와 우파 인사들로 조직되었으나, 좌파의 득세로 우파 민족주의자들이 탈퇴하였다.
  3. 국내 치안을 담당하기 위해 치안대를 조직하였다.
  4.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조선건국동맹이 모태가 되었다.
(정답률: 65%)
  • 제시된 설명은 8.15 해방 직후 전국에 145개의 지부를 조직하고 건국 작업에 들어간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에 대한 것입니다.

    정답 해설:
    정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는 1945년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48년 9월 북한에 수립된 국가이므로, 이 설명은 옳지 않습니다.

    오답 해설 (나머지 보기들은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 대한 옳은 설명입니다):
    * 건준은 초기에는 좌우 합작을 지향했으나, 점차 좌파적 성향이 강해지면서 우파 민족주의자들이 이탈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 건준은 해방 직후 국내 치안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각 지역에 치안대를 조직하여 활동했습니다.
    * 건준은 1944년 여운형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건국동맹을 모태로 하여 해방 직후 확대 개편된 조직입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7. 선사시대 유적지와 그 곳에서 발굴된 유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모두 고르면?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ㄱ, ㄴ, ㄷ
(정답률: 75%)
  • ㄱ. 부산 동삼동 유적, 제주 고산리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은 모두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이며, 덧무늬 토기는 신석기 시대의 유물입니다. 따라서 이를 청동기 시대 유물로 설명한 것은 옳지 않습니다.
    ㄴ. 상원 검은모루 유적, 연천 전곡리 유적, 공주 석장리 유적은 모두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대표적인 유적지입니다.
    ㄷ. 서울 암사동 유적, 봉산 지탑리 유적, 김해 수가리 유적은 모두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빗살무늬 토기가 출토된 곳입니다.

    따라서 옳은 것은 ㄴ, ㄷ입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8. 다음 괄호안에 들어갈 사상과 가장 관련이 깊은 것은?

  1. 수선사 결사 운동
  2. 만적의 봉기
  3. 정조의 화성 건설
  4. 조선의 한양 천도
(정답률: 61%)
  • 괄호 안에 들어갈 사상은 국가의 길흉화복을 땅의 형세와 연결 지어 해석하는 풍수지리설입니다. 지문에 언급된 '전 국토의 자연 환경을 유기적으로 파악하는 인문 지리적 지식', '경주 중앙 귀족들의 부패와 무능, 지방 호족들의 대두' 등 혼란한 시대 상황에서 새로운 왕조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안정된 사회를 염원하는 인식이 종합되어 풍수지리설이 체계화되었습니다.

    * 정답: 조선의 한양 천도
    조선의 한양 천도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수도를 결정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정도전, 무학대사 등 당대 지관들이 한양의 지형이 길지임을 강조하며 천도를 적극적으로 주장했습니다.

    * 오답 해설:
    * 수선사 결사 운동: 고려 무신정권기 지눌이 주도한 불교 개혁 운동으로, 풍수지리설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만적의 봉기: 고려 무신정권기에 만적이 주도한 노비 해방 및 신분 타파 운동으로, 풍수지리설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 정조의 화성 건설: 조선 후기 정조가 수원에 건설한 계획도시이자 군사 요충지입니다. 풍수지리설적 고려가 있었을 수 있으나, 지문에서 설명하는 '혼란한 사회에서 안정된 사회를 염원하며 체계화된 사상'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은 새 왕조의 수도 선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 풍수지리설의 핵심 기능입니다. 따라서 한양 천도만큼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9. 갑신정변 이후 동학농민봉기에 이르는 시기까지 조선의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청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조선은 외교, 내정에 있어서 청의 간섭을 받았다.
  2. 러시아의 세력 확장에 불안을 느낀 영국은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
  3. 국내 식량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곡물 수출을 금하는 방곡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4. 일본과의 무역은 청과의 무역보다 그 성장세가 더 높았다.
(정답률: 58%)
  • 갑신정변 이후 동학농민봉기까지의 시기는 청의 영향력이 조선에서 절대적이었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청 상인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청과의 무역이 일본과의 무역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특히 임오군란(1882) 이후 체결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으로 청 상인의 내지통상이 허용되면서 청의 경제적 영향력은 더욱 커졌습니다. 따라서 일본과의 무역 성장세가 청과의 무역보다 높았다는 설명은 옳지 않습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10. 조선 숙종대의 정국에 대한 옳은 설명으로만 묶인 것은?

  1. ㄱ, ㄴ
  2. ㄱ, ㄷ
  3. ㄴ, ㄷ
  4. ㄴ, ㄹ
(정답률: 69%)
  • 해설:
    정답은 ㄱ, ㄷ입니다.

    * . 숙종 대에는 당파 간의 연립 정권 형태에서 벗어나 왕이 직접 주도하여 특정 당파를 물리치고 다른 당파를 집권시키는 환국(換局) 정치가 전개되었습니다. 이는 붕당을 자주 교체하는 방식으로 왕권을 강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 . 숙종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붕당 간의 다툼을 이용하고 조종하여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붕당의 갈등을 억누르기보다는 이를 통해 왕의 우위를 확립하는 방식이었습니다.
    * . 숙종 대에 서인 세력은 송시열의 학통을 계승한 노론과 윤증을 중심으로 하는 소론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이는 갑술환국 이후 정치적, 학문적 대립이 심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 . 이조전랑이 후임자를 천거하는 권한은 붕당 정치의 폐단 중 하나로, 이를 없앤 것은 숙종이 아니라 영조의 탕평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습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11. 고려시대에 국가불교가 발전한 사실과 관련된 내용으로 옳은 것을 모두 고르면?

  1. ㄱ, ㄴ
  2. ㄱ, ㄴ, ㄷ
  3. ㄱ, ㄴ, ㄷ, ㄹ
(정답률: 56%)
  • 고려시대 국가 불교의 발전과 관련된 내용으로 옳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ㄱ. 고려는 승과를 실시하여 합격한 승려들에게 법계를 부여함으로써 국가적인 차원에서 불교를 관리하고 승려의 지위를 인정했습니다.
    * ㄴ. 팔관회와 연등회는 고려의 대표적인 국가적 불교 행사였으며, 왕이 보살계를 받는 의식이 거행된 것은 왕실과 불교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 ㄷ. 승록사(僧錄司)는 승려들을 관리하던 국가 기관이었고, 승군(僧軍)은 국방에 참여하여 불교가 국가 체제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ㄹ.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은 주로 강화도에서 제작되었으며, 해인사는 이를 보관하는 사찰입니다. 따라서 해인사에서 제작되었다는 설명은 사실과 다릅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12. 조선 후기(17∼19세기)의 상공업 발달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인구의 자연 증가와 인구의 도시 유입으로 상품화폐 경제의 진전이 보다 촉진되었다.
  2. 물산이 모이는 포구에서의 상거래는 장시에서의 상거래보다 규모가 컸다.
  3. 선대제가 성행하면서 상인들이 수공업자들에게 예속되었다.
  4. 의주의 중강과 봉황의 책문 등 국경을 중심으로 관무역과 사무역이 이루어졌다.
(정답률: 59%)
  • `선대제`(선대제, putting-out system)는 상인이 수공업자에게 원료나 자본을 미리 제공하고 생산된 제품을 거두어 판매하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본과 판매망을 가진 상인이 수공업자를 지배하고 수공업자가 상인에게 예속되었습니다. 따라서 '상인들이 수공업자들에게 예속되었다'는 설명은 사실과 반대이므로 옳지 않습니다.

    나머지 보기들은 조선 후기 상공업 발달의 옳은 내용입니다. 인구 증가와 도시 유입은 상품화폐 경제 발달을 촉진했으며, 포구 상거래는 물산의 집산지로 장시보다 큰 규모를 가졌습니다. 또한 의주 중강과 봉황 책문 등 국경 지역에서는 관무역과 사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13. 신라의 주요 지식인의 활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으로만 묶인 것은?

  1. ㄱ, ㄴ
  2. ㄱ, ㄹ
  3. ㄴ, ㄷ
  4. ㄷ, ㄹ
(정답률: 81%)
  • * ㄱ. 원광: 세속오계를 제정하고, 고구려 공격을 위해 수나라에 군사를 요청하는 걸사표(乞師表)를 작성한 것은 원광의 주요 활동이므로 옳은 설명입니다.
    * ㄴ. 강수: 외교 문서 작성에 능했으나, 왕에게 풍간의 뜻을 담은 화왕계(花王戒)를 지어 바친 인물은 설총입니다. 따라서 옳지 않은 설명입니다.
    * ㄷ. 원효: 금강삼매경론, 대승기신론소 등 걸출한 저술을 남긴 것은 맞지만, 황룡사 9층탑 건립을 건의한 인물은 자장율사입니다. 따라서 옳지 않은 설명입니다.
    * ㄹ. 최치원: 신라 하대 당 유학생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계원필경(桂苑筆耕),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과 같은 저술을 남긴 것은 최치원에 대한 옳은 설명입니다.

    따라서 옳은 것은 ㄱ과 ㄹ입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14. 다음의 글이 보여주는 시기에 일어난 경제적 상황과 가장 관계가 없는 것은?

  1. 전국적으로 장시는 1천여 개소였고, 보통 5일마다 열렸다.
  2. 시전상인의 금난전권이 더욱 강화됨에 따라 도고상업이 위축되었다.
  3. 경강상인의 활동으로 한강유역에는 나루터가 많이 늘어났다.
  4. 덕대(德大)가 노동자를 고용하여 대규모 광산을 개발하였다.
(정답률: 74%)
  • 제시된 글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장사꾼들이 모여 물건을 교역하는 모습, 즉 포구 상업의 발달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조선 후기의 경제 상황을 보여줍니다.

    정답인 "시전상인의 금난전권이 더욱 강화됨에 따라 도고상업이 위축되었다"는 조선 후기의 경제 상황과 가장 관계가 없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사상(私商)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시전상인의 금난전권이 점차 약화되거나 폐지(신해통공, 1791년)되었고, 도고(獨占的 도매상인) 상업은 오히려 발달하여 상권을 장악해 나갔습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15. 조선시대의 학파 및 학설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주로 서경덕 학파와 이황 학파, 조식 학파가 동인을 형성하였고, 이이 학파와 성혼 학파가 서인을 형성하였다.
  2. 16세기 중반부터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면서 학설과 지역적 차이에 따라 서원을 중심으로 학파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3. 18세기 호락(湖洛)논쟁은 노론과 소론 간의 학문적 논쟁이었다.
  4. 주로 서경덕 학파와 조식 학파로 구성된 북인은 서인보다 성리학적 의리명분론에 구애를 덜 받았다.
(정답률: 65%)
  • 호락(湖洛)논쟁은 18세기 노론 내부에서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을 중심으로 벌어진 학문적 논쟁이었습니다. 호론(湖論, 충청도 노론)과 낙론(洛論, 서울·경기 노론) 간의 대립이었으며, 노론과 소론 간의 논쟁이 아니었습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16. 다음 글을 쓴 역사가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 우리의 민족정신을 ‘혼’으로 파악하고 ‘혼’이 담겨있는 민족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2. 우리 고대 문화의 우수성과 독자성을 강조하여 식민주의사관을 비판하였다.
  3.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하였음을 강조하여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성 이론을 반박하였다.
  4. 「진단학보」를 발간하고 문헌고증을 중시하는 순수 학문적 차원의 역사 연구에 힘썼다.
(정답률: 54%)
  • 주어진 글은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문구입니다. 그는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규정하며, 민족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강조하였습니다.

    * 정답 해설:
    * "우리 고대 문화의 우수성과 독자성을 강조하여 식민주의사관을 비판하였다."는 신채호 선생에 대한 설명으로 옳습니다. 그는 「조선상고사」 등에서 단군조선과 부여, 고구려 역사를 연구하며 우리 민족의 뿌리와 고대 문화의 독자성 및 우수성을 강조하여, 한국사를 타율적이고 정체된 것으로 보았던 식민주의 사관을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이는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일제에 대항하는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 오답 해설:
    * "우리의 민족정신을 ‘혼’으로 파악하고 ‘혼’이 담겨있는 민족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박은식 선생의 역사관입니다. 그는 민족의 정신을 ‘혼’에 비유하여, 나라가 없어져도 혼이 살아 있으면 민족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하였음을 강조하여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성 이론을 반박하였다."는 백남운 등 유물사관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일제 식민사관의 정체성론을 비판하며 한국사도 세계사의 보편적인 발전 궤도를 따라 발전했음을 강조했습니다.
    * "「진단학보」를 발간하고 문헌고증을 중시하는 순수 학문적 차원의 역사 연구에 힘썼다."는 진단학회 학자들의 특징입니다. 이들은 식민주의 사관을 비판하면서도, 엄밀한 문헌 고증과 실증적 연구 방법을 통해 한국사를 객관적으로 연구하려 했습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17.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 관한 옳은 설명으로만 묶인 것은?

  1. ㄱ, ㄴ, ㅁ
  2. ㄱ, ㄹ, ㅁ
  3. ㄴ, ㄷ, ㄹ
  4. ㄴ, ㄷ, ㅁ
(정답률: 65%)
  •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 대한 해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 ㄱ. 옳은 설명입니다. 남북연석회의는 김구와 김규식이 제안하고 주도했으며, 북측의 김일성과 김두봉 등 여러 단체가 이에 호응하여 성사되었습니다.
    * ㄴ. 옳은 설명입니다. 남북연석회의의 핵심 의제 중 하나는 UN 한국 임시 위원단의 남한 단독 총선거 추진에 반대하고 단독 정부 수립을 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 ㄷ. 틀린 설명입니다. 이승만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며 남북협상에 반대했으므로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 ㄹ. 틀린 설명입니다. 미국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했으며, 남북연석회의는 한반도 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모색하는 움직임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이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회의를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참고: '유엔 미관'은 '유엔 이관' 또는 '유엔 관리'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ㅁ. 옳은 설명입니다. 남북연석회의에서는 한반도 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미국과 소련 양군(양국 군대)의 동시 철수를 결의했습니다.

    따라서 옳은 설명으로만 묶인 것은 ㄱ, ㄴ, ㅁ입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18. 다음 금석문 중 신라 진흥왕대의 정복사업을 살피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만 묶인 것은?

  1. ㄱ, ㄹ
  2. ㄴ, ㄷ
  3. ㄴ, ㄹ
  4. ㄷ, ㄹ
(정답률: 81%)
  • 신라 진흥왕대의 정복사업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되는 금석문은 정복한 영토를 기념하거나 순시한 내용을 기록한 비석들입니다.

    * ㄷ. 단양 적성비: 551년(진흥왕 12)에 세워진 비석으로, 신라가 고구려로부터 적성(현 단양)을 점령한 후 그 지역민들을 포섭하고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했음을 보여주며, 진흥왕의 한강 유역 진출 초기 상황을 알려줍니다.
    * ㄹ. 북한산 순수비: 555년 또는 556년(진흥왕 16~17)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진흥왕이 새로 편입한 한강 유역을 순시하고 그 위업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순수비 중 하나입니다. 신라의 영토 확장 과정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따라서 ㄷ과 ㄹ은 진흥왕대의 정복 사업과 밀접하게 관련된 금석문입니다.

    * ㄱ. 임신서기석: 612년(진평왕 34)에 화랑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유교 경전을 공부하고 나라에 충성할 것을 맹세한 내용으로, 진흥왕대 정복 사업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 ㄴ. 남산 신성비: 591년(진평왕 13)에 신라 남산신성을 쌓고 관리하는 데 백성들을 동원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축성 및 국방 관련 비석이지 진흥왕대의 정복 활동을 직접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아닙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19. 조선시대 의궤(儀軌)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현재 남아있는 의궤는 모두 18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2.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한 주요 행사를 기록과 그림으로 남긴 책이다.
  3.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의궤들은 병인양요 때에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당하였다.
  4. 「화성성역의궤」는 화성의 성곽을 축조한 공사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정답률: 71%)
  • * 정답 해설: 현재 남아있는 의궤 중에는 18세기 이전, 즉 17세기부터 제작된 것들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현재 남아있는 의궤는 모두 18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설명은 옳지 않습니다.

    * 오답 해설: 문제에서 옳지 않은 설명을 찾는 것이므로, 나머지 보기는 의궤에 대한 옳은 설명입니다.
    *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한 주요 행사를 기록과 그림으로 남긴 책이다."는 의궤의 정의입니다.
    *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의궤들은 병인양요 때에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당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 "「화성성역의궤」는 화성의 성곽을 축조한 공사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는 해당 의궤의 내용에 대한 정확한 설명입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20. 다음은 지방 토착 세력의 역사적 변천에 대한 서술이다. 시대순으로 바르게 나열된 것은?

  1. ㄱ-ㄴ-ㄷ-ㄹ
  2. ㄴ-ㄷ-ㄱ-ㄹ
  3. ㄴ-ㄷ-ㄹ-ㄱ
  4. ㄴ-ㄹ-ㄷ-ㄱ
(정답률: 54%)
  • 정답은 ㄴ-ㄷ-ㄱ-ㄹ입니다.

    각 서술의 시기적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 ㄴ. 농민 봉기를 배경으로 각처에서 일어나 반독립적인 호족세력으로 성장하였다.
    * 이는 후삼국 시대(신라 말기)에 지방에서 발생한 호족 세력의 등장을 설명합니다. 중앙 통제력이 약화되고 농민 봉기가 빈번해지면서 각 지역의 유력자들이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 ㄷ. 사심관 제도, 기인 제도를 통하여 견제를 받기 시작하였다.
    * 이는 고려 초 태조 왕건이 통일 후 호족 세력을 통합하고 견제하기 위해 실시한 정책입니다. 사심관 제도는 중앙 관리로 하여금 고향의 일을 맡게 하여 간접적으로 지방을 통제하고, 기인 제도는 지방 호족의 자제를 개경에 머물게 하여 인질로 삼는 방식이었습니다.

    * ㄱ. 속현에 감무가 파견되기 시작함으로써 자치적인 지배력에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다.
    * 이는 고려 중기 이후에 이루어진 중앙 집권 강화책입니다. 고려 초기에는 주현에만 지방관이 파견되고 속현은 지방관이 없는 채로 주현이나 토착 세력에 의해 간접적으로 지배되었으나, 중기 이후에는 속현에도 감무와 같은 중앙 관리를 파견하여 지방 통제를 강화하고 토착 세력의 자치적 지배력을 약화시켰습니다.

    * ㄹ. 군공 등으로 첨설직을 가지게 된 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 이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에 이르는 시기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첨설직은 실제 직무와 관계없이 명예직으로 주어진 관직으로, 지방의 유력자나 군공을 세운 인물들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점차 중앙 집권화가 이루어지면서 지방 토착 세력을 중앙 체제 안으로 편입시키거나 포상하는 한 방식이었습니다.

    따라서 지방 토착 세력의 변천을 시대순으로 나열하면 ㄴ(호족 등장) → ㄷ(고려 초 호족 견제) → ㄱ(고려 중기 지방 통제 강화) → ㄹ(고려 후기~조선 초기 명예직을 통한 포섭)의 순서가 됩니다.
profile_image
1

*오류신고 접수시 100포인트 지급해드립니다.

< 이전회차목록